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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시네하우스, 용서할 수 없는

입력 2024.01.31 14:07
수정 2024.02.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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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소설 '어디에서나 슬픔은 반짝인다' 서적포 출간

    [영화 각본ㆍ감독 작품]
    2002 '로드무비'
    2004 '얼굴없는 미녀'
    2010 '3D디지털 노마드'
    2015 '세상끝의 사랑'
    2020 '그녀의 비밀정원'
    2024 '뚜르게네프 소설 첫 사랑' 영화 프리 프로덕션
    '베트남 프로젝트' 영화제작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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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감독 사진제공 - 영화 언포기버블-출처 넷플렉스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한 영화를 작품성이 있다 또는 없다 라고 평할 때가 있다. 내게 작품성이란 새로움이다. 모든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 즉 독창성이 미학의 핵심 요소이듯 영화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작품성 있는 영화란 새로운 시각과 독창적인 표현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멜로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등 어떤 장르의 영화에도 난 이 원칙을 적용한다.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능력, 그리고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풍요로워 질 것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 우린 선택 장애에 걸린 채, 하염없이 리모컨을 누르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영화를 제대로 골라 보는 것도 꽤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한 세상이다.

     

    필자라고 독자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났지 않을까 싶어 감히 독자분의 영화길잡이 노릇을 자처하며 필자가 최근에 봤던 영화들 중 새로움이 있는 영화, 즉 작품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을 이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를 하고자 한다.

     

    21세기 가족의 형태는 핵가족의 개념을 넘어 이젠 독거인생(?)들이 판치는 1인 가구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독거인생이라 해도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누군가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 즉 어떤 형태로든 인간은 가족에 속에 있는 존재이다. 가족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모든 불행의 원인라고 정신 분석학자들은  말한다.

     

    몇 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생각중이다.

     

    되도록 쉽게 구해 볼 수 있고, 너무 오래되지 않은 최근 영화들을 위주로 다뤄 볼 예정이다. 비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상평?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철저하게 나만의 취향으로 영화 감상평을 쓸 것이기에 어쩌면 똑똑하신 평론가들의 시선과는 전혀 상반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뭐, 상관없을 것 같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산드라블록 주연의 2021년에 넷플릭스에서 오픈한 영화 '언포기버블'이다. 산드라블록 주연의 영화다. 노라 핑샤이트가 감독을 맡았으며, 동명의 영국 드라마가 영화의 원작이다.

     

    루스’(산드라 블록)는 보안관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20년 간의 수감생활 후 가석방 되어 사회에 복귀한다. 경찰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루스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더욱 가혹했다. 가석방된 루스는 20년 전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야만 했던 (나이차이가 많이 난)여동생을 절박하게 수소문하며 찾아 다닌다. 교도소에서 동생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루스. 영화 언포기버블은 유일한 핏줄인 여동생을 찾아가는 산드라블록의 외로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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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감독 사진제공 - 영화 언포기버블-출처 넷플렉스

     

    영화 '언포기버블'(The Unforgivable)에는 네 가족이 등장한다.

     

    '루스의 가족' 부모님의 자살로 여동생 캐드린을 돌봐야 했던 루스.

     

    루스는 입양기관에 동생을 빼앗기지 않으려 총을 들고 저항하다 보안관을 살해하게 된다. 결국 루스는 보안관 살해 혐의로 교도소에 갇히고 여동생 캐드린은 결국 입양을 돼 소식이 두절된다.

     

    '보안관 가족' 루스의 총에 살해된 보안관의 두 아들. 아버지를 부재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두 아들, 루스가 겨우 20형 형을 살고 가석방되자 부당하다고 생각,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루스의 여동생을 납치한 뒤 루스를 유인해 살해하려 한다.

     

    '캐드린을 입양 가족' 지적인 부부로 캐드린을 입양, 피아니스트로 훌륭하게 키워낸다. 유년시절 트라우마로 어린 시절 기억이 없는 캐더린을 보호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루스가 보낸 편지를 철저히 숨긴다. 가석방된 루스와 캐서린 양육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변호사 가족' 루스의 양육권 소송 변호사 가족. 루스의 사연을 들은 변호사, 동생 캐더린을 찾기 위한 루스의 법정투쟁을 돕는다.

     

    하지만 경찰 살해범 루스를 돕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인,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루스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영화 '언포기버블'은 각기 다른 네 가족이,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대립하고 복수를 계획하며 서로의 이해를 통해 화해를 하는 그런 이야기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절묘한 생략과 압축을 통해 이 복잡하게 얽힌 네 가족의 갈등을 몰입도 높게 그려낸다.

     

    특히, 루스 역에 산드라블록의 연기는 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표정에 굳게 다문 입, 외로움에 지친 공허한 눈동자, 동생을 찾기 위한 산드라블록의 절제된 연기, 때때로 응축된 감정을 폭발적으로 토해내는 감정 연기는 영화 보는 내내 그녀의 연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하지만, 산드라 블록뿐만이 아니다. 죽은 보안관의 가족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지면서 만만치 않게 힘든 삶과 고통을 거쳐 왔다.

     

    '언포기버블'은 한쪽만 피해자, 가해자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누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미묘한 상황들이 촘촘히 얽히면서 극의 흐름과 연출 등에 퀄리티가 더해진다.

     

    8년 전 어느 날, 필자는 이유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다 새벽 녘에 가방을 챙겨 강남버스터미날로 가서 3시간여 버스를 탄 후 어머니 집에 도착 했다.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손을 짚고 엉거주춤 서 있는 채로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필자를 보셨다. ‘아이고 내 새끼 연락도 없이 갑자기 먼 일로 내려 왔는가?’ 그리고 그날 점심 무렵 어머니는 119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셨다.

     

    그리고 밤 8시 경 숨을 거두셨다. 생과 사를 넘나들던 그 긴박했던 순간들, 어머니도 내 형제들도 이제 이별할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식들 손을 차례차례 어루만지시며 무언의 작별인사를 하시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허공에 향해 어머니! 아버지! 라고 외치신 뒤 숨을 거두셨다.

     

    저세상으로 건너가기 직전, 먼저가 기다리고 계실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며 90세의 나이로 자식들 곁을 떠나셨던 우리 형제들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인줄만 알았는데 어머니 또한 그 누구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혈연관계는 한 인간의 생애 전부를 지배하고도 남을 정도로 섬뜩할 만큼 질기고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되어 있는 것 같다.

     

    리차드 도킨스 책 '이기적유전자'에 따르면 지구의 주인은 유전자, 즉 DNA이고 생명체는 DNA를 보관하고 운반하고 전송하는 생존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인간이 그토록 혈연관계에 집착하고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 돼 있는 것도 DNA 보전과 전달을 위해서라고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책'이기적유전자'에서 주장한다. 인간도 예외 없이 DNA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산드라블록은 정녕 DNA 보존과 전달을 위해 20년 전에 소식이 끊긴 여동생을 찾아 그토록 처절하게 세상과 싸웠을까?

     

    보안관이었던 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한 산드라블록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방기하며 범행을 실행하는 두 형제의 행동도 과연 DNA 보존과 전달을 위한 것이었을까?

     

    또한, 자신들과 무관한 DNA를 가진 입양한 딸을 뺏기지 않기 위해 동생을 찾으려는 산드라 블록과 처절한 법정 싸움을 벌이던 입양부모의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 될 것인가?

     

    모든 생명체들 중에 인간처럼 이렇듯 혈연에 집착하고 진심인 생명체가 과연 존재할까? 산드라블록의 멋진 영화 '언포기버블(The Unforgivable)'을 보면서 인간들에게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8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나는 왜 아무 이유 없이 불면의 밤을 보내다 새벽에 고속버스를 타고 어머니에게 달려 갔을까? 떠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라는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