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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시네하우스, 힐빌리의 노래

입력 2024.02.15 08:22
수정 2024.02.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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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소설 '어디에서나 슬픔은 반짝인다' 서적포 출간

    [영화 각본ㆍ감독 작품]
    2002 '로드무비'
    2004 '얼굴없는 미녀'
    2010 '3D디지털 노마드'
    2015 '세상끝의 사랑'
    2020 '그녀의 비밀정원'
    2024 '뚜르게네프 소설 첫 사랑' 영화 프리 프로덕션
    '베트남 프로젝트' 영화제작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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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 - 자료출처(네이버 영화)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2020년 개봉한 영화이다.

     

    원작은 J. D. 밴스의 회고록으로 가난과 폭력이 대물림 되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백인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가난해진 미국 로스트벨트지역 백인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함에 따라 이 책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전국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벤스(주인공)는 끔찍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해병대에 자원입대, 이라크에 파병됐다. 제대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마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 했다.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해야만 하는 흙수저 출신 벤스.

     

    하지만, 로스쿨을 졸업하기엔 그 장학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벤스는 대형로펌 인턴(보조변호사)으로 뽑혀야 하는 절체 절명의 상황. 하지만 현실은 로펌과 면접기회도 얻기 힘들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다행히 지도교수의 소개로 (면접기회를 얻기 위한)금수저 로펌 변호사들과의 식사자리. 하지만 흙수저인 벤스의 고향 힐빌리를 모욕하는 듯 한 한 변호사의 발언에 화를 내고 식사자리를 뛰쳐나온다.

     

    인턴으로 뽑히기는 커녕 면접 기회마저 날려버린 벤스, 이대로 변호사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예상 밖으로 로펌대표는 실의에 빠진 벤스에게 면접기회를 주기로 한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로펌사무실로 와 면접을 보라는 전화를 받은 벤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벤스의 핸드폰이 날카롭게 울린다. 고향 누나에게서 갑작스럽게 온 전화, 엄마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벤스 네가 필요해, 제발 부탁이니 지금 당장 고향으로 와줘, 지금 우리 가족에겐 벤스 네가 필요해.’

     

    벤스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 벤스는 로펌사무실에 전화를 해 내일 10시 약속을 변경할 수 없냐고 양해를 구해보지만 대표 변호사의 스케줄 상 변경이 불가하다는 답을 듣는다.

     

    헤로인 중독으로 몸부림치는 엄마 곁에 남을 것인가? 냉정하게 엄마를 뿌리치고 로펌 면접에 참석할 것인가? 갈등하던 벤스는 결국 차를 몰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벤스의 끔직한 어린 시절과 로스쿨 학생인 현재가 교차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고향에 도착한 벤스는 약에 취한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 한 뒤, 밤새 차를 운전해 무사히 내일 10시 면접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긴장감과 몰입도는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 해 성공한다는 얼핏 ‘개천에서 용난다’하는 스토리는 충분히 식상해 보인다.

     

    하지만, 론하워드 감독의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이 진부함을 뛰어넘는 묘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배우들의 열연이라 생각한다. 2021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에 밀려 수상이 불발 되었던 외할머니 역의 글렌 클로스, 헤로인에 빠진 모친 역의 에이미 아담스, 그리고 아들역의 게이브리얼 배소가 멋진 연기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에이미 애덤스>

    주인공 밴스 엄마역으로 열연한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는 정말 아픔 그대로이다. 헤로인 중독의 전직 간호사인 밴스 엄마. 어린 벤스에게 엄마의 존재는 움직이는 화약고, 흉기와도 같은 위협이다. 벤스 엄마(에이미 애덤스)의 눈 밑 다크서클만으로도, 미국 백인 하층민들의 피폐한 삶을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뚝뚝 떨어지듯 생생한 날것 그대로 연기를 한다.

     

    <글렌 클로즈>

    복잡한 남자관계, 헤로인 중독, 분노조절 장애로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딸, 그 딸로부터 손주 벤스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외할머니 역의 글렌 클로즈. 그녀의 카리스마가 이 영화에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어린 손주의 미래를 위해 시궁창 같은 딸의 집에서 벤스를 데리고 나오는 외할머니. 글렌 클로즈 특유의 복잡 미묘한 표정연기 대신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숫사자 보다 더 용맹한 할머니 역을 인상 깊게 표현해 낸다.

     

    <가브리엘 바쏘>

    매일매일 자신의 선택이 장래의 나를 결정한다! 외할머니 글렌클로즈의 보호아래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벤스.

    유년기 벤스역의 아역배우와 성장한 벤스역에 가브리엘 바쏘의 완벽한 싱크율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을 한다. 가브리엘 바쏘는 2023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나이트에이전트‘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알렸다. 살집이 좋고 넉넉한, 무던한 성격의 청년 벤스 역을 가브리엘 바쏘는 사려 깊고 섬세하게 연기를 해낸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최종 관문이 마찬가지인 대형로펌 인턴쉽 면접.

     

    인턴(보조변호사)가 되기 위한 면접장에 주인공 벤스는 과연 도착할 수 있을까? 고향에 도착해 바쁜 누나를 대신해 쓰러진 엄마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는 벤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출발을 해 밤새 운전을 해야 내일 면접 장소에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시간, 벤스는 최종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최종 면접을 갈 것인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아픈 엄마 곁에 남아서 함께 살아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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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 - <위험한관계> 글렌클로즈(왼쪽)<할빌리의노래> 글렌클로즈(오른쪽) 사진제공 네이버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결정의 순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문득 몇 년 전 영화펀딩 때문에 만났던 한 스님이 생각났다.

     

    조선의 다완(찻사발)을 재조명, 발굴해 내고 최초로 전시회까지 개최를 했던 스님이었다.

     

    시골집 마당 개밥그릇으로 뒹굴 던 조선의 막사발, 그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국보로 지정 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담은 거칠고 투박함 속에서 극강의 세련된 막사발을 만들었던 조선,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자신들의 국보로 추앙했던 일본.

     

    도자기에 관한 한 한국 일본 양국이 다 멋진 나라들이라고 말했던 그 스님.

     

    그 스님과는 비즈니스를 떠난 서너 번의 사적 만남이 있었다.

     

    그 스님을 따라 통영의 한 사찰 방문 한 뒤, 밤바다를 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었다. 스님은 낮에 방문했던 그 절에서 수행 중이던 젊은 승려들의 태도에 대해 으르렁 적의를 드러냈다. 젊은 중놈들은 수행은 뒷전이고 맨날 빈둥빈둥 싸가지 없게 퍼 논다는 것이었다. 그 젊은 승려들의 태도가 영화감독인 내게 창피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의 태도가 불손하긴 했다. 필자는 물었다, 승려의 수행, 그 고난의 길 끝에 과연 득도의 경지가 있습니까?

     

    그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행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다 보면 어느 한 순간 자신의 두개 골이 열리고 자신의 영혼이 우주의 중심과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그런 열반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그게 바로 득도의 순간! 자신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거대한 뻥이요 엄청난 구라였다! 어찌 그런 말을 저리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일종의 환각상태 라면 모를까? 곡기를 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면 그런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싶었다.

     

    숨길 수 없는 냉소가 내 얼굴에 분명 스쳤을 텐데도 스님은 필자 같은 중생, 아니 미물이 믿거나 말거나 어떤 관심도 상관도 없다는 태도였다. 스님이 필자에게 어쩌다 영화감독이 됐냐고 물었다. 사실 나도 잘 몰라서 애매하게 얼버무린 후 어쩌다 승려가 되었는지 물었다. 그 분의 대답은 이랬다.

     

    군대를 제대하고 집에 왔는데 본능적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속세를 떠나 부처의 품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겨울이면 시베리아 가창 오리들이 본능적으로 만경강 동림저수지로 찾아오듯이 그렇게. 집안의 대들보, 외동아들이 갑자기 삭발하고 중이 되겠다며 일어서자 자신의 허리춤을 꽉 붙잡으며 울부짖던 어머니. 도대체 왜, 이 에미를 네 형제 부모를 버리고 산속으로 떠난단 말이냐. 스님은 담담하게 필자에게 말했다.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의 손, 그 악력이 참으로 세게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허리춤을 잡은 어머니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낸 후 흐느끼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산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어머니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다니.......참으로 독하디 독한 인간.

     

    한 순간 번쩍 스치는 생각, 두개골이 열리고 자신의 영혼이 일직선으로 뻗쳐서 우주의 중심과 교감했다는 그 스님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적인 느낌?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샌 것 같은데 다시 영화 '힐빌리의 노래'로 돌아오자면 그 스님과 어머니의 이별의 순간이 주인공 벤스와 엄마의 이별장면과 오버랩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요양원 입원을 거부하며 고집을 피우는 엄마.

     

    할 수없이 오갈 데 없는 엄마를 모텔방 침대에 눕히는 벤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 주인공 벤스는 팔다리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가족이라는 사슬을 끊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모텔방, 금단현상으로 몸을 떨며 아들에게 떠나지 말고 자기 곁에 있어 달라 칭얼대는 엄마.

     

    하지만 벤스는 엄마 손을 잡고, 작별을 고한다. 잘있어 엄마, 건강하고 꼭 행복해야해......

     

    가족을 떠나기로 한 벤스의 그 결정이 왜 그렇게 필자의 가슴에 먹먹한 잔상으로 남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핏줄을 끊어내는 독한 인간들. 그 독한 아름다움......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