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전문가 컬럼] 시네하우스, '로스트 인 더스트'

입력 2024.02.29 07:50
수정 2024.02.29 08:10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소설 '어디에서나 슬픔은 반짝인다' 서적포 출간

    [영화 각본ㆍ감독 작품]
    2002 '로드무비'
    2004 '얼굴없는 미녀'
    2010 '3D디지털 노마드'
    2015 '세상끝의 사랑'
    2020 '그녀의 비밀정원'
    2024 '뚜르게네프 소설 첫 사랑' 영화 프리 프로덕션
    '베트남 프로젝트' 영화제작 준비 중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0.jpg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 - 자료출처 네이버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정지훈 기자= 잠은 안 오고, 티비는 보기 싫고, 할 일도 없고, 혼자여서 외로웠던(?) 7년 전 어느 겨울밤.

     

    자정이 가까웠던 시각 핸폰이 울렸다. ‘감독님 전대요, 독박육아 고생했다고 집사람이 놀다 오래요~ 헐, 이 밤중에? 뭐하고 놀건데? 영화봐요 감독님’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의 현대판 서부극, 은행털이범 형제 두 명과 그들을 추적하는 보안관 두명에 관한 영화로 시커먼 두 중년 사내 둘이 텅빈 용산 cgv 영화관에서 관람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새벽 2시. 텅 빈 쇼핑몰광장은 마른 잎들만 으스스 날렸다.

     

    2016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 되었던 이 영화는 우리나라 제목은 ‘Lost in Dust 먼지 속에서 길을 잃다‘ 원제는 영어관용구로 ’Hell or High Water 이판사판‘ 으로도 해석 가능하겠다.

     

    테일러 쉐리던이 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시카리오’ 관람 후 그 강렬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몇 년 전 통영 부둣가,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대방어가 생각났다. 그 역동적이고 싱싱한 몸부림, 영화 ‘시카리오’의 새로움은 정말 강렬했다.

     

    Nwe Sensibility!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는 북미 평단으로부터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극사실주의 범죄 영화인데 ‘로스트 인 더스트’ 또한 ‘시카리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처절함과 강렬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니 이번에는 처절함과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함이라고나 할까?

     

    이야기는 아들 둘인 이혼남 토비(동생)와 교도소에서 십년 복역 후 출소한지 얼마 안 된 태너(형)두 형제가 텍사스 메릴랜드 시골 은행들을 털고 다니면서 시작된다. 목표는 은행에 담보로 잡혀져 곧 은행에 빼앗기게 생긴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을 되찾는 것이다. 두 형제는 은행에서 빚진 돈을 은행돈을 털어 갚겠다고 총을 든 것이다. 벌써 싱싱하지 않는가?

     

    형제가 이렇듯 어머니의 농장을 되찾으려는 이유는 그곳에 대량의 석유가 묻힌 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유로 은행은 일부러 어머니에게 돈을 대출해 줬고 상환을 방해하며 연체를 구실로 농장을 뺏으려 하는 것이다. 빚더미에 시달리며 벼랑 끝에 내몰린 형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은행을 터는 것이다. 빈곤의 대물림으로 아버지로부터 학대받던 형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감옥에서 삶을 보내야 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노동자로 처절히 살았지만 결국 실직과 이혼, 그리고 병든 어머니까지 돌봐야 했던 동생. 크리스 파인.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현대판 서부극 갱스터 무비로 '탈취'와 '착취'가 주제 이지만 필자는 이 영화에서 뜬금없는 가족애와 형제애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왜 일까? ‘로스트 인 더스트’는 겉으로는 까칠하고 거칠지만 속내는 그 누구보다 따뜻한 텍사스 마초맨들의 브로맨스를 효과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웨스턴 무비 특유의 남성미를 듬뿍 담아내고 있다.

     

    포스터도 그렇고 작품 분류도 범죄 영화로 되어 총격전과 액션이 많이 예상되지만 막상 내용의 대부분은 템포가 느린 로드 무비처럼 진행이 된다.

     

    그 형제들은 왜 은행강도가 되어야 했을까? 사실 나는 그 것이 제일 중요했다. 동생 크리스 파인은 자신의 가족, 두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식이 없는 형은 왜 크리스파인을 도왔을까? 형은 동생을 위해 은행강도가 된 것이었다. 형은 동생과 조카를 위해 경찰의 미끼가 되어 동생과 동생가족, 그리고 농장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다. 핏줄의 행복을 위한 마초맨들의 사랑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랬다.

     

    페미들의 거센 봉기로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는 수컷 마초남들. 불과 십여 년전만 해도 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존재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런 남성상은 왠지 낡고 진부한 캐릭터로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핵가족 독거인생들이 득세하는 사회구조 때문이지 않을까? 부모, 형제, 자식을 먹여 살리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세상과 싸우며 분투 했던 멋진 남성상은 이제 점점 희미해지다가 곧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될 것만 같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티’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황량하고 광활한 텍사스 들판은 지독한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형제의 황폐한 정신세계와 공허감을 은유적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광활한 들판을 돌아다니며 은행을 털어야 했기에 유난히 자동차 씬이 많았던 영화, 운전대를 잡은 크리스 파인의 멋진 모습에 필자가 30대 때 우연히 만났던 하이에나처럼 밤거리를 헤매며 손님을 찾아다녔던 한 잊을 수 없는 택시 운전수가 떠올랐다.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1.jpg
    김인식 감독 자료제공 - 자료출처 네이버

     

    필자의 삼십대 후반, 그때도 살벌하게 추운 겨울밤이었다. 압구정동 포차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너무나 취해 몰래 빠져나와 집에 갈 생각으로 밤길을 걸었다. 택시를 잡아야 했는데 현대백화점을 지나 한남대교 남단까지 걸었지만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그때 길 건너편에 나타나는 빈 택시, 손을 흔들고 악을 써댔지만 휑! 사라져 버렸다. 저체온증의 필자는 갑자기 신진대사가 급속히 떨어지며 숨이 가파왔다. 잠시 후 다행이도 한 택시가 다가와 필자 앞에 섰다. 황급히 택시를 타며 외쳤다. ‘기사님 서초동 교대역부근이요.’

     

    그런데, 침묵의 차 안. 백미러를 통해 날카로운 기사의 눈빛과 부딪혔다. 운전사는 한 덩치 했다. 그런데 조수석에도 어깨가 떡 벌어진 한 등치가 타고 있지 않는가? 승차할 땐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일부로 몸을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납치 강도 살인! 양재천에 시체 유기 등등 어마무시한 공포가 필자를 얼어붙게 했다. 침묵의 택시 안, 택시는 코아백화점 쪽으로 좌회전해 잠원역을 지나 삼풍백화점(지금의 아크로비스타)쪽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순 없고, 제발 신호에 걸려 멈춰만 서라 그 순간 차문을 열고 뛰쳐나가 탈출하리라.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어지던 파란불의 행진, 마침내 고속터미날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걸렸다. 택시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감사합니다‘ 차문을 조신하게 여닫은 후 후적후적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조수석의 떡대, 그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난 택시문 박차고 나살려라 도망쳤을 것이다.

     

    신호를 기다리는 침묵의 차 안. 밤하늘에 파란불이 보석처럼 빛나자 택시기사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좀 전에 한남대교 밑에서 손을 흔드셨죠? 손님 태우려고 유턴했는데 좀 전에 그 승객이 택시를 잡았어요. 손님 태우려고 안 된다고 했는데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데 날씨가 추워서요.’ 기본요금도 못가 내린다고 하길래 태웠어요. 합승해서 기분 나쁘셨을 텐데 미안합니다. 고개를 돌려 필자를 보고 웃는 그 운전사, 미소가 따뜻했고 치아가 고른, 미남 운전사였다.

     

    텅빈 도로, 가로등 밝은 삼풍백화점 언덕길을 오르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던 그 운전사. 백미러를 통해 나와 시선이 부딪히자 ‘아이고 죄송, 오늘 맘먹고 아침부터 운행했더니 피곤하네요. 경기가 나빠서인지 거리에 사람도 없고, 손님 내려드리고 나도 그만 집에 들어갈랍니다. 내 새끼들도 보고 싶고요.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흐뭇하게 자랑까지 했다.

     

    저는 5살, 7살 딸이 둘인 딸딸이 아빠랍니다. 흐흐 비록 택시나 모는 가난뱅이지만 그 놈들 생각하면 힘이 펄펄 납니다. 참으로 든든하고 매력 있었던 마초 상남자, 연기자 했어도 됐을법한 훈남 딸딸이 아빠였다.

     

    영화 보는 내내 운전대를 잡고 은행을 털러 다니던 크리스파인, 왠지 낯이 익은 사람처럼 생각됐는데 한 순간 느꼈다. 그 택시운전사가 영화 주인공 크리스 파인을 닮았었던 것이다. 두 아들을 위해 은행을 털러 운전을 하던 크리스 파인, 두 딸을 위해 아침부터 택시운전을 했던 그 기사님. 허참 부러우면 지는 건데, 필자인 난...... 뭘했지?

     

    7년 전 그 겨울밤 독박육아 보상으로 심야영화를 함께 본 그 친구도 딸딸이 아빠였다. 필자와 20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제작자인데 인연이 깊고 길어서 연장자인 필자하고 허물없이 편하게 지낼 법도 한데 항상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싹수있고 가족 같은 젊은 제작자였다.

     

    ‘흐흐 결혼은 하지만 자식은 낳지 않는 걸로 집사람과 합의 했어요’ 그가 신혼 사오년 차까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딸딸이 아빠가 되어서 필자 앞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관계로 가끔 독박육아를 해야 했던 그 친구, 그 보상으로 안사람이 가끔 자유시간을 하사하면 심야 영화를 본다는 그 친구,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철부지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아이 안 난다더니, 딸딸 이라니, 이건 배신이야......

     

    필자는 순대국에서 순대를 하나하나 건져내며 생각했다. 난 이 나이 먹도록 뭘 한 거지? 절대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던 그 멍청하고 돌이킬 수 없는! 황당한 생각. 짜디짠 순대국물을 홀짝이다 드는 생각, 어쩌겠어, 깨진 쪽박에 쏟아진 물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독신으로 자유롭게나 살자고!! 그런데 진정한 자유인이 어디 있기나 할까?

     

    무섭게 흐르는 세월, 그래 그 세월에 끝에 뭔가 정말 환타스틱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그래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 뭔가 쨍하고 해뜨는 그 아름다운 날을 기대하며......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