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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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기업의 핵심 역량과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핵심 역량이란 고객가치를 경쟁자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차별적인 역량을 말한다. 핵심 역량을 찾으려면 외부자료나 내적 자기성찰의 통합이 필요하며, 확신할 정도로 구체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핵심 역량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한번 정하면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핵심 역량을 바꾸려면 지금까지 쌓아온 비교 우위를 포기하겠다는 각오부터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처음에 탁월한 검색엔진 알고리즘을 핵심 역량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검색광고 기반의 수익 모델 설계와 네트워크 효과가 구글의 차별화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이 기업의 핵심 역량을 기준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객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기업의 경쟁적 지위다. 핵심 역량이 원동력으로 작용해 기업의 가치 창출 능력이 향상되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하면 결국 기업은 경쟁적 지위를 얻는다. 핵심 역량은 경쟁자와 자신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모방이 어렵다. 현재 또는 잠재적 경쟁자와 차별화해 그 희소한 자원으로 최대 가치를 얻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핵심 역량이다. 핵심 역량을 이야기 할 때 '선도자 우위'란 말도 많이 듣는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처음 진입한 기업은 나중에 등장한 경쟁력 있는 후발주자에게 밀려 시장점유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기업은 주요 고객 확보 및 유지, 네트워크 효과달성, 우수 인재 유치 등의 핵심 역량으로 무장할 때만 선도적 지위를 유지 할 수 있다. 핵심 역량 정의는 쉽지 않고 때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 바이오기업 등 원천 기술기반의 기업은 특허 등으로 표현될 수도 있겠다. 필자의 경우 핵심 역량을 창업코칭, 투자라고 말 할 수 있겠다. 10년이상 경험하고, 학습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잘 하기위해 학습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은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알고 키울 필요가 있다. 핵심 역량은 쉽게 표현하면 남들에 비해 보다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업이 성장에 있어 중요한 핵심 가치는 회사의 원칙과 기준이 라고 볼 수 있다. 핵심 가치는 왜 중요할까? 고객들은 기업이 핵심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건을 구매한다. 하지만 핵심 가치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배달의 민족인 우아한 형제들의 4대 핵심가치는 4가지 이다. ▲규율위의 자율: 우리는 규율 위에 세운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합니다. ▲스타보다 팀웍: 회사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성과를 내는 곳! 천재 한 사람에 의지한 조직이 아닌, 팀웍을 통해 성과를 내는 조직을 지향합니다. ▲짐지함과 위트: 일에 대한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쉽고 명확하고, 위트있게 문제를 풀어 나갑니다. ▲열심만큼 성과: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과를 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기업에서 핵심 가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과 기준이 이므로 기업이 처한 환경과 하는 일을 고려하여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핵심 가치를 좀더 구체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행동을 정하기도 한다. 다음은 넷플렉스 직원의 행동강령이다. ▲간명하게 글을 쓰고 말한다. ▲직위나 의견 차이에 관계 없이 상대방을 존중한다. ▲우리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문제를 제기한다. ▲논란이 생길 일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회사의 성공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동료의 성공을 축하한다. ▲실수를 빨리 인정한다. ▲동료 앞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 한다. ▲동료를 돕는데 시간을 낸다. ▲정보를 활발히 공유한다. 기업의 핵심 가치가 없다면 직원들은 원칙과 기준이 없으므로 항상 대표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고, 정체성을 잃기 쉽다. 기업이나 개인이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핵심 가치를 잘 만들고,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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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윤소희,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 중인 제주출신 비올리스트[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국제콩쿠르 우승자 비올리스트 윤소희 지난 6월 초에 미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제주출신(제주 동광초 졸업)의 비올리스트 윤소희가 세계적인 음악콩쿠르인 미국 워싱턴국제콩쿠르(Washington International Competition) 에서 비올라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콩쿠르의 비올라 부문에서 한국인 우승은 처음이다. 워싱턴국제콩쿠르는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1948년 창설되어, 1950년 현악 부문을 대상으로 첫 콩쿠르가 개최되었다.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만18세에서 28세의 음악가를 대상으로 매해 성악, 피아노, 현악 부문을 번갈아 가며 개최하고 있다. 작지만 가장 화려한 스팩의 소유자 우리나라 예술의 불모지인 제주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과 최고의 교수가 지도하는 음악중고교와 음악대학에 입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윤소희의 학력은 다음과 같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입학하였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하여 오순화와 이한나 교수를 사사하며 조기졸업과 음악원 전체 최우수로 졸업하였다. 이후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석사과정에서 디미트리 무라스를 사사하였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로베르토 디아즈를 사사하였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음악원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디미트리 무라스를 사사하며 체임버 연주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는 뉴욕 주립대 스토니브룩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최근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인 Washington International Competition 비올라 부분 한국인 최초 1위는 물론이고,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협주곡 콩쿠르 우승, National String Comptition 입상, 성정음악콩쿠르 비올라 부분 최초 전체 대상(2016년), Lionel Tertis International Viola Competition 특별상, 동아음악콩쿠르 1위, 대관령국제음악제 협주곡 콩쿠르 등 국내 대부분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통영국제음악제 및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시리즈 등의 국내 무대를 비롯하여 펄만 뮤직 프로그램, 라비니아 스틴 인스티튜트, 체임버 뮤직 커넥츠 더 월드, 보우도인 뮤직 페스티벌, 뮤직엣먼로, 타오스 스쿨 오브 뮤직, 올림픽 뮤직 페스티벌, 포시즌 뮤직 페스티벌 윈터 워그숍, 평창대관령음악제 등 다양한 체임버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경력을 쌓아갔다. 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 비올리스트 타베아 치머만과 킴 카쉬카시안, 첼리스트 마르시 로젠과 스티븐 이설리스 등 세계적인 거장 음악가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기억에 남는 순간, 제주의 자연을 노래하고픈 비올리스트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어보았다. ”지난 5월 Kronberg Academy에서 주최하는 Chamber Music Connects the World에 참가를 해서 Steven Isserlis와 Tabea Zimmermann과 함께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도, 연주를 하는 동안에도 너무 꿈 같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상과 레코딩으로 접해서 동경해왔던 연주자들을 실제로 만나고 함께 같은 무대에 서서 음악을 만들어갈 때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기케이스에 같이 찍은 사진을 넣어서 악기를 꺼낼 때 마다 그 날을 추억하면서 음악을 할 때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연습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워싱턴국제콩쿠르 당시 우승,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협주곡 콩쿠르 우승 등 콤페티션에서의 우승 당시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양한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해서 실내악 단체를 들어가거나 연주자들을 모아서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고 싶습니다. 단체라 하더라도 크지 않고 소규모의 구성으로 각자의 소리가 잘 들리고 모든 사람들이 리드를 하는 편성을 선호합니다. 또한, 가르치는 일에도 큰 관심이 있어서 교육자의 길도 걷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상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긍정적 부정에서 출발하였다. 이것이 문화ㆍ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은 현실을 넘어선 그 이상을 보는데서 시작해야한다. 제주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올리스트로 성장하여 훌륭한 음악가의 길을 가고 있는 윤소희에게 음악의 선배로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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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비영리법인 설립조건과 절차[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정부 공익단체의 지원에 관하여 정부는 2016년부터 투명한 보조금 운용을 위해 개인사업자 또는 영리법인이 아닌 비영리 법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계도 및 지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존에 아동복지, 녹인복지, 사회복지 계열의 지원시설 운영을 개인에서 비영리법인 등의 단체로 주체를 변경하고 있으며, 심지어 아동복지 계열의 돌봄센타 등은 2019년를 기준으로 단체가 아니면 개인의 운영을 금지하는 것으로 추진 중입니다. 개인보다는 법인의 운영이 법인에서 정한 규칙 및 지침에 따라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더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추진방침은 어느 정도의 이해가 가고 있지만, 합명, 합자, 주식회사 등의 영리법인보다는 설립조건과 신청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에서 많은 고충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오늘은 비영리법인 설립조건과 절차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먼저, 비영리법인은 등기를 함으로써 법인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리법인과 동일한 성립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영리법인과는 다르게 공익법인은 중앙정부처, 비영리법인(사단, 재단)은 시ㆍ도지사에게 설립허가를 받아야 하는 점에서 손쉬운 영리법인과는 다르게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합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설립신청 이전부터 신청까지 준비해야할 서류를 완벽하게 구비하지 못해 통상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기간보다 3~4배의 시간과 노력을 통하여 겨우 설립허가를 받을 정도로 절차 매우 복잡하며, 준비해야 하는 서류 또한 담당부서 및 담당자의 기호에 맞춰야 하는 지침에도 없는 조건으로 인해 일반인으로써는 직접신청을 진행하다가 결국에는 전문가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2013년 이전에는 등기업무를 수행하는 법무사들이 비영리법인 설립업무를 종종 진행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나, 2013년 이후에는 행정사법 등의 타 법에 접촉되어 변호사 또는 행정사만이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진행할 수 있으니, 이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와 관련되어 설립준비,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설립등기 등 총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설립조건은 시ㆍ도지사, 시ㆍ도지사 해당주무부서, 시ㆍ도지사 담당자별로 설립조건은 다르지만, 설립발기인은 통상 비영리법인 설립 준칙에 따라 이사 3명이상, 감사 2명이내 등 통상 5명정도의 발기인이 필요하며, 기본자산 또한 사단법인은 2,500만원에서 5,000만원, 재단법인은 3억원에서 5억원 정도로 설립 시 필요합니다. 어는 정도의 기본자산과 발기인이 준비되었더라도 법인의 목적과 사업범위에 따라 해당주무부서를 식별하여 사전설명을 통해 준비서류 작성 착수를 해야하지만, 여기서 가급적 법인은 목적과 사업범위는 설립신청시에는 반드시 최소한으로 해야합니다. 필자 또한 여러 사업분야의 업무를 신청하는 의뢰인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의뢰인의 의지가 너무 확고하여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사업범위를 정한 후 사전검토를 요청하였지만, 담당부서 간의 비영리법인업무를 인정하지 않아 담당부서 식별에는 8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적도 있습니다. 이에 최초 설립신고시의 사업범위는 가장 최소한으로 잡아 신청을 하시는 것을 권고 드립니다. 비영리법인 설립 서류 등을 모두 구비한 후 별 이상없이 설립허가를 득하면 설립허가 시 신청된 주사무소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등기소에 설립등기를 하시면 되겠지만, 설립등기 또한 개인이 하기에는 복잡한 부분이 많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고드립니다. 설립허가와 등기가 종료된 다면 바로 주사무소 소재를 관할하는 세무서에 고유번호증 또는 사업자등록증을 발급하시면 됩니다. 법인의 등기 및 고유번호증을 발급완료하시면 고유번호증을 통한 비영리법인 명의 은행통장을 개설하여 최초 기본자산을 입금 및 입금확인증을 발급하셔서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해 준 시ㆍ도지사에게 통지함으로써 설립의 절차는 종료됩니다. 필자는 비영리법인 설립과 관련하여 400회 이상 수행으로 절차를 간략하게 설명하여도 이해를 할 수 있으나, 혹시 이글을 보시고 비영리법인 설립이 필요하신데 절차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경우는 가까운 행정사를 찾아가셔서 상담하실 것으로 적극 권고드립니다. 개인이 아무리 잘 작성하여도 미비되는 서류로 인해 보정지시만 받다가 그 동안의 노력과 시간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 잘 모르시는 경우는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하여 진행하시는 것으로 권고드립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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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영화 속 음악가 이야기② 파가니니 -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Paganini, The Devil's Violinist, 2013) 니콜로 파가니니(Paganini Nicolo 1782~1840)는 시대적 배경을 배제하더라도 그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을 만큼 뛰어난 기교를 보인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악기에 대해 놀라운 습득력을 가졌던 그는 5세에 만돌린을 배우고 7세에 바이올린을 배웠다. 8세에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여 아버지 안토니오 파가니니(Antonio Paganini)를 놀라게 했다. 만돌린 연주자였던 그는 파가니니에게 고향인 제노바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조반니 세르베토(Gionanni Servetto)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게 했다. 파가니니는 9세에 자신의 곡을 변주한 라캄파넬라(La Campanella)를 작곡하여 첫 연주회를 가졌다. 11세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스승의 실력을 뛰어넘었던 파가니니는 여러 스승을 소개받아 공부했으나 모든 스승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할 정도가 되어 14세부터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게 되었다. 16세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들고 이탈리아 곳곳을 순회하였다. 그가 가는 곳에서는 놀라운 기교에 감탄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파가니니의 초절적 연주법은 시대를 앞서 갔었기 때문에 청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도 많았다. 너무나 뛰어난 연주 실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라도 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면서 파가니니에게 악마와 관련된 부정적 루머가 생기기도 했다. 1799년부터 17세의 파가니니는 뛰어난 연주로 많은 연주회를 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준비 없이 얻게 된 모든 것은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이어지고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의 구속에서 점차 벗어난 파가니니는 도박에 빠져 카지노를 직접 차리고 고소 고발에 연루되면서 사회적 윤리와 교회의 도덕기준에 어긋난 행동들이 언론과 교회와의 불화로 이어져 뛰어난 혁신적 음악가로서의 인기와 함께 부정적 이미지가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46세인 1828년에 시작한 파가니니의 성공적인 유럽 연주여행으로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을 열광시켰다. 끝없이 펼쳐지는 연주 테크닉의 개발과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청중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전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4옥타브에 걸치는 넓은 음역에서 현란한 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가 만들어 낸 연주기법으로는 현에 손가락을 가만히 붙여서 휘바람 같은 소리를 내는 하모닉스(harmonics), 왼손으로 음을 짚는 동시에 활을 이용해 현을 튕기는 왼손가락 피치카토, 높은 음에서 두 현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내는 더블스토핑 주법 등이 있다. 동 시대의 많은 음악가들도 파가니니의 혁명적 음악성에 매료되었다. 슈베르트,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베를리오즈 등이 그들이다. 오늘날까지도 파가니니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영국의 배우이며 거장 영화감독인 버나드 로즈(Bernard Rose, 1960~ )가 2013년에 만든 니콜로 파가니니의 삶과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58세에 세상을 떠난 파가니니의 생애 중에서 1831년(49세)부터 1834년(52세)까지 영국 런던과 프랑스의 불로뉴와 파리에서 벌어진 이른바 ‘왓슨 스캔들(Watson scandal)’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왓슨 스캔들의 실제 전말(前末)은 이러했다. 1831년 5월 초 파가니니가 런던에서 첫 객원연주회를 개최했을 때, 영국 왕립극장의 한 음악가인 존 왓슨(John Watson)이 열여섯 살 된 자신의 딸 샬롯 왓슨(Charlotte Watson)을 파가니니에게 인사시켰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성악에 재능이 있는 딸의 성공을 위해 파가니니의 무대에 출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파가니니는 연주회마다 딸의 아버지를 피아니스트로 고용했다. 그리고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역량이 부족한 그의 딸을 무대에 세워 노래를 부르게 했다. 말년의 파가니니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1832년 12월 5일 파가니니는 최고가의 금(金)브로치(brooch)를 구입하여 이 선물을 샬롯 왓슨에게 건네며 청혼했다. 1834년 봄, 벨기에 순회연주를 하는 중에도 브뤼셀의 일간 신문에서는 삼류 여가수가 영국 민요로 귀를 따갑게 한다는 혹평기사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청중의 반응이 없고 연주회가 실패하자 파가니니는 수행원들과 아들 아킬레를 데리고 불로뉴로 향했다가 갑자기 샬롯 왓슨과 함께 행방을 감추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 존 왓슨은 언론과 함께 파가니니가 미성년자를 유혹해 가출을 사주했다는 내용으로 폭로성 기사를 터뜨렸다. 곤란한 처지에 놓인 파가니니는 공개서한을 통해 아버지 존 왓슨을 공격했다. 다음은 당시의 음악지 '가체테 뮈지칼(Gazette Musicale) 28호'에 실린 파가니니의 글이다. - 그녀는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벗어나려고 도망쳤고, 자발적으로 나에게 보호와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사심 없는 고결한 충동에 따랐을 뿐이다. 선행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질책이나 비난 대신 칭찬을 해 주어야 마땅하다. - 가을이 되어 볼로뉴에서 파리로 돌아온 파가니니는 파리의 신문들에 의해 온갖 비난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맞게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언론지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주르날 데 데바(The Journal of Debates)'의 1834년 9월 15일자 신문에는 파리의 영향력 있는 비평가 쥘 자냉(Jules Janin, 1804~1874)의 글이 올라왔다. 파가니니를 예술가로서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망가뜨릴 목적이 다분한 내용이었다. 자냉은 날카로운 기세의 필봉을 휘둘러 여섯 단에 달하는 장문의 논박기사를 이어갔다. 파가니니는 자냉의 붓끝에서 욕심 때문에 말라죽은 예술가가 되어 돈밖에 모르는 불량한 수전노로 전락했다. 3년 전 1831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팔레 로열에서 궁정 대신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연주해 줄 것을 국왕이 직접 요청했을 정도로 파가니니에 열광하고 찬양했던 파리에는 언론과 대적하다 쓰러진 시대의 귀재 음악가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대중만 남게 되었다. 1834년 9월 28일, 파가니니는 왓슨 스캔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富)는 얻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언론의 뭇매로 탈진한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고향 제노바로 향했다. 영화 중의 파가니니 역은 실제 바이올린 연주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데이비드 가렛(David Garrett, 1980~ 독일)이 연기하였다. 가렛은 네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열 살에 무대에 데뷔하였다. 열세 살에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와 협연하여 주목 받기 시작한 후 1999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유명한 줄리아드 스쿨(The Juilliard School)에서 음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Itzhak Pelman, 1945~ )을 사사했다. 2003년에 줄리아드 스쿨 교내 작곡 경연에 입상하여 훌륭한 재능을 인정받고 2006년부터는 클래식을 떠나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 활동을 선언한 가렛은 팝(Pop)과 락(Rock), 라틴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천재적인 능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굳힌 인물이다. 가렛의 연주는 영화를 통해 파가니니의 연주 실력과 느낌을 관객에게 만족스럽게 재연해 주었다. 파가니니의 생애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카프리스 5번’을 연주하다가 활로 매를 맞는 어린 시절의 파가니니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파리에서 일어났던 왓슨 스캔들은 런던으로 배경이 바뀌어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우르바니(제러드 해리슨 Jared Harris 역)라는 파가니니의 내면 변화에 대한 극적 효과를 증폭시키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등장한다. 우르바니는 천재적 재능은 있으나 도박에 빠져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파가니니에게 접근해 막대한 자금 제공으로 최고의 명예를 얻는 연주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동업을 제안해 성공적으로 전 유럽에 걸쳐 화려한 명성을 떨쳐나간다. 영국에서는 지휘자 존 왓슨(크리스쳔 매케이 Christian Mckay 역)이 런던으로 파가니니를 초청해 콘서트를 열 계획을 갖고 파가니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마에스트로 파가니니여! 천재적인 연주에 감동한 제가 당신을 런던 코벤트 가든 오페라하우스에 초청하여 단독 콘서트를 열고자 합니다. 대영제국에서 화려한 데뷔 무대가 될 것입니다”라며 신용장과 계약금을 보낸다. 편지를 받은 우르바니는 파가니니에게 런던행을 권하지만 도박과 여자에 빠진 파가니니는 제안을 거절한다. 초청자 존 왓슨은 파가니니가 런던으로 오기를 기다리다 파산의 지경에 처하던 중에 도박으로 결국 바이올린까지 잃게 된 파가니니를 강제로 런던으로 데려온 우르바니 덕분에 콘서트 준비를 진행한다. 유명한 파가니니가 온다는 소문에 왕궁에서도 추천장을 보내주고 홍보에 협조하지만 커다란 음모를 꾸미고 있던 우르바니는 왕궁의 관람객에게도 엄청난 입장료를 요구한다. 파가니니가 연습을 위해 존 왓슨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집 앞에서는 날마다 더 타임지의 신문기자 에델 랭햄(조엘리 리처드슨 Joely Richardson 역)이 선동한 여성윤리연합회에서 ‘타락한 악마를 추방하자’는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파가니니는 왓슨의 딸 샬롯 왓슨(안드레아 덱 Andrea Deck 역)의 아름다운 노래에 감탄하고 함께 연주하며 가까워지다 사랑에 빠진다. 드디어 콘서트가 열리는 날 행방이 묘연해진 파가니니를 찾지 못하고 연주는 시작된다. 이때 모두를 긴장시키며 뒷문에서 갑자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등장한 파가니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연주 솜씨로 청중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대단한 연주에 왕도 감탄하여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파가니니는 샬롯과 함께 사랑의 이중주를 앵콜곡으로 연주한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모든 수익금을 독차지하려는 우르바니는 음모를 꾸며 신문기자 에델 랭햄을 샬롯이라고 속여 술 취한 파가니니와 동침시키고는 파가니니를 성추행범으로 몰아 감옥에 갇히게 한다. 파가니니를 타락한 사람으로 오해한 샬롯은 홀로 성악가의 길을 택해 다른 남자와 결혼해 떠나가고 파가니니는 영국에서 추방당해 샬롯을 그리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이론 중에 '각색은 원작의 재해석과 영화적 재구성이다'라는 린다 허천(Linda Hutcheon, 1947~ 캐나다)의 각색에 대한 정의가 있다. 각색 영화는 원작을, 역사 영화는 역사를 재해석하여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상화의 마법이다. 영상화는 시나리오와 감독의 테크닉이 빚어내는 고도의 예술이다. 영상화는 한 장면에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담을 수는 없지만 반면에 한 장면으로도 영화적 서사를 모두 담아낼 수 있다. 흥행에 성공을 거둔 영화가 수많은 관람객을 동원하며 폭풍처럼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문학 작품을 읽거나 그림과 음악을 감상한 후에 토론과 의견을 개진할 때는 그 느낌과 스토리를 기억해 내며 조금씩 음미하던 사람들이 인기 있는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마치 그 영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곧바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토해낸다. 원작이나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거의 그렇다. 이것은 문학과 미술과 음악에는 없지만 영화만이 갖고 있는 영상화의 마법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작용이다. 한 번의 영화 관람으로도 각색된 시나리오와 감독의 재해석과 재구성의 의도가 관객에게 거의 학습된다. 이것은 관객의 해석일까 객석의 착각일까. 아니면 예술적 영상의 약효일까 영화적 서사의 독성일까. 당대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동기부여를 전했지만 시대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고통 받고 악마화 되어 고통속에 생을 마감한 파가니니는 오늘도 그 가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사탄도 아니었고 악마의 아들도 아니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루머와 이를 증폭시킨 저널리즘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죽은 후에도 시신으로 떠돌다 36년 만에 가까스로 묘지에 묻힌 파가니니는 현대의 영화예술에 의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칭호를 더욱 굳히게 되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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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SMART하게 창업을 계획하면 어떨가?[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한 기업의 경우 5년 후 창업성공률을 실제 컨설팅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약 20%정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처음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고 또한, 변화무쌍한 시장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가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필자는 2012년 말부터 엔젤투자클럽에서 엔젤투자자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창업기업의 IR(투자제안설명)을 들을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기업에 투자를 하는지 물어 보기도 합니다. 처음 창업기업에 투자를 할때는 그 회사가 가진 기술, 대표자의 성향 등을 보고 막연하게 성공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투자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투자한 기업은 기술도 좋았고 대표님의 역량도 있었지만 투자한지 9년만에 폐업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개별적인 투자보다는 전문투자자가 운영하는 개인투자조합에 출자하여 투자를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창업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하고 하고자 합니다. 집을 지을 때는 용도에 따라 입지를 중요시하고, 오피스텔, 아파트, 주택 등을 고려하고 얼마에 팔지, 어떻게 지을지, 자본을 어떻게 조달하지, 시공은 누가할지 등 꼼꼼하게 고민해서 시작할 것입니다. 아파트의 경우 입지ㆍ시행사ㆍ시공사ㆍ세대수ㆍ주변환경 등에 따라 쉽게 분양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한번 집을 짓어 본사람은 다시는 안 짓겠다는 분도 있고, 다시 지으면 정말 잘 지을수 있겠다 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겠죠. 좋은 집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설계를 잘해야 하고, 또한 설계대로 실행을 잘 해야 하고, 또한 실행 시 개선할 것은 즉시 반영하여 진행하면 멋진 집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창업자는 창업사업계획, 즉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SMART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잘 반영되어 있는지 검토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specific 구체적인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measurable 측정가능한가? 측정가능한 목표를 세우자. ▲achievable 성취가능한가? 현실에 맞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자. ▲revevant 관련이 있는가? 기업의 비전이나 목표에 연관성있는 목표를 세우자. ▲time bound 시간적 범위를 고려했는가?목표 달성 기간을 구체적으로 정하자. 창업자는 비전이나 큰 꿈은 가지고 있되 시작은 작은 계획부터 SMART하게 목표를 수립하여 달성하다 보면 분명 나중에는 원한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 '행복한 생활'을 위해 몸무게 81KG만들기 목표를 SMART하게 검토한 내용입니다. ▲구체적인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 하루에 1,000보 이상 걷기. - 아침, 점심,저녁 규칙적인 식사하기. - 커피 하루에 2잔이상마시지 않기. ▲측정 가능한가? 측정가능한목표를 세우자. - 하루에 만보: 만보기 어플로체크. - 규칙적인식사: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기 아침7시, 점심12시, 저녁 6시. - 커피: 아침1잔, 저녁 1잔. ▲성취 가능한가? 현실에 맞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자. - 매일 스스로 체크리스트 만들어 체크하기. ▲관련이 있는가? 기업의 비전이나 목표에 연관성 잇는 목표를 세우자. - 행복한 생활하기에 건강관리는 꼭 필요. ▲시간적 범위를 고려 했는가? 목표 달성 기간을 구체적으로 정하자. - 2022년 9월 2일 ~ 2022년 12월 31일.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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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지역 문화 소재 창작뮤지컬 '황금백서향의 비밀'[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창작가족뮤지컬 황금백서향의 비밀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 말 제주도문예회관에서는 창작 가족뮤지컬 ’황금백서향의 비밀‘ 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제주의 전통설화를 모티브로 순수 제주의 제작진과 제주의 출연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된 창작가족뮤지컬이다. 작품의 배경은 오늘날 제주의 곶자왈로서 가족과 마을의 이야기, 도깨비, 오백장군 등이 등장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본 사업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주도, 제주도개발공사와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 제주은행이 후원한 프로젝트로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기업에서 함께 참여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사업의 처음과 끝을 지도, 관리, 운영한 주최ㆍ주관 기관인 케이블 티브이 제주방송과 제주호은아트센터의 사업 운영 관리에 대한 노력은 희생과 봉사정신은 지역의 문화예술과 언론기관을 넘어선 제주의 문화와 가족 및 청소년을 위한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방송철학의 하나로 보여졌다. 공연은 성공리에 개최되었다. 어린이 공연의 특성상 온 가족이 응원부대로 객석에서 응원하였고 여러 기관장과 단체장들의 응원과 교육적 가치 및 기대는 무대에 오르는 출연진과 관객이 하나 되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상품 최근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우리나라 근ㆍ현대사의 아픔인 제주4.3을 소재로 하는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제주를 넘어서 서울 및 경기도 등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해당 지역을 전국으로 알리고 있다. 마침, 지난 6월 한달 간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일번지인 대학로에서는 제주 출신의 작곡가이자 기획자인 김경택이 참여한 제주4·.3의 아픔을 조명한 창작뮤지컬 '동백꽃피는날' 의 공연이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김재한 극본과 연출, 김경택 작곡과 연주를 통한 극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맡은 김경택은 제주 출신으로 타악기 바탕의 음악을 펼치는 동시에 국내ㆍ외에서 작곡콩쿨과 국악과 양악을 접목한 음악활동 등으로 그 천재성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작품은 지역의 문화를 소재로 하여 창작된 작품으로 제주사람이 만들어 낸 제주와 서울에서 공연된 매우 의미있는 창작뮤지컬이다. 공연예술의 상품화 및 고도화 과정 엊그제 성료된 교육적 요소가 강한 창작 가족뮤지컬 '황금백서향의 비밀' 이나 우리나라 근ㆍ현대사의 아픔인 제주4.3을 소재로 하는 창작오페라 '순이 삼촌' 이나 한달 동안 서울 대학로에서 개최되었던 창작뮤지컬 '동백꽃 피는날' 은 모두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창작 작품이면서 제주를 브랜드하는 공연예술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제주를 넘어 서울의 중심의 대형극장과 뮤지컬 전문소극장, 제주의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진행된 작품으로 제주문화의 대중화 및 확장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는 공연예술의 다음 과정이 중요하다. 좋은 작품을 만들었으니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고 함께 감동 할 수 있도록 온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이다. 그것은 바로 공연예술 경영을 바탕으로 공연의 전략적 홍보 및 다양한 마케팅을 통한 공연예술의 상품화 및 고도화 과정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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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대한 설명[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지난번 사설에서는 '배려가 아닌 보장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도움을 드리는 의미에서 단순하게 설명 드렸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아직도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오늘은 보충하는 의미에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장애인주차구역은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따라 설치를 의무화 시키고 있습니다. 통상 주차대수가 10대 미만인 경우 장애인 주차구역 의무 설치에서 제외는 되지만, 현재 다가구 주택을 제외하면 거의 다세대주택 및 아파트 들은 주차대수가 10대 이상으로 의무설치 기준에 해당됩니다. 최근 필자가 살고 아파트의 경우는 300세대 미만의 세대수를 보유한 집합건물이지만 주차대수가 10대 이상으로 의무설치기준에 해당되어 지방자치조례에 따른 전체대수의 3% 를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설치해야 합니다. 의무설치기준에 따라 건축물 출입구에 가까운 지역에 설치가 되었으며, 일반주차구역 주차크기보다 큰 폭 3.3미터 이상으로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에게는 원활하게 승ㆍ하차를 할 수 있는 크기로 장애인의 경우는 휠체어를 사용할 경우 상용차폭에서 1.2미터의 여유공간을 주어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보장입니다. 그러나, 이를 모르고 비장애인의 경우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거주자 등의 보유차량 주차구역이 작아짐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거주자의 의견을 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실제 장애인의 보유차량을 조사하여 집합건물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숫자에 맞게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필자가 볼 때는 이러한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하자는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거주하여 차량을 이용하는 장애인과 방문이 필요되어 주차를 해야하는 장애인을 고려하여 볼 때는 현재의 법률기준에 실제 설치기준에 부합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아파트 및 공공기관 시설을 돌며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촬영하여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편의 증진을 위해서는 매우 올바른 공익실천 활동이라는 명목하에서는 바른 행동인데 한편적으로는 신고를 당하고 과태료를 납부하는 자에게는 공분을 살 수 있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처분규정상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서 잠시 정차만 행위가 있어도 과태료부과가 가능하나, 신문고 어플상 장애인 전용구역 불법 주차 시 1분간격으로 사진 및 촬영 자료를 게시하는 방법에 따라 1분 미만의 정차는 허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를 방지하기 위해 삼각대 등의 위험표지판을 운영하여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한 행동도 장애인등록차량(주차가능) 출입 시 관리자 등에 의해서 위험표지판이 이동이 안 될 경우에는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방해 행위로 신고조치 되어 불법 주차보다 5배 이상의 과태료 물을 수 도 있으니 이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장애인등록차량이 표시가 개선 및 배포되며 지난 2017년부터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를 재발부 하지않고 기존의 양식으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할 경우는 장애인등록차량 부정사용으로 불법 주차에 비해 약20배의 과태료 처분이 되며, 장애인등록차량 일지라도 장애인이 직접 운전하지 않거나, 동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는 부정사용에 해당되오니 이점 참조하시어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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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모차르트 이야기⑩ 청년 모차르트의 희망과 고뇌[전문가 컬럼]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모차르트, 피아노를 만나다 이 무렵 모차르트는 일생을 함께 할 새로운 악기인 피아노를 만나게 된다. 피아노는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2)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 발명한 것으로 1689년경부터 1710년경 사이에 3대의 피아노를 완성했다. 그후 크리스토포리의 제자 지오반니 페리니(Giovanni Ferrini, 1699~1758)가 뒤를 이어 피아노를 제작했다. 도이칠란트에서는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ed Sibermann, 1683~1753)이 크리스토포리의 디자인을 따라 피아노를 제작했고, 질버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Johannes Zumpe, 1726~1790)가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이용한 스퀘어 피아노를 개발했다. 현재는 피아노가 대중적인 악기가 되었지만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의 대표적인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였다. 하프시코드는 나라별로 클라비 쳄발로(Clavicembalo, 이탈리아), 쳄발로(Cembalo, 도이칠란트), 클라브생(Clavecin 프랑스)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하프시코드가 새의 깃대나 딱딱한 가죽조각으로 만든 플렉트럼(Plectrum)으로 하프처럼 현을 타는 것과 달리 피아노는 펠트로 된 해머(Hammer)로 현을 치는 구조로 음이 힘차고 크게 되어 넓은 무대의 연주나 다른 많은 악기와의 합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클라비 쳄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Clavicembalo col piano e forte)’로 ‘부드럽고 큰 소리를 연주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다’라는 의미였다. 오늘날에는 줄여서 피아노라고 부르고 있다. 피아노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최고의 악기로 판단한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이용해 자신의 표현력을 늘려갔다. 모차르트의 희망과 고뇌 1773년(17살) 3월, 고향 잘츠부르크에 돌아온 이후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청년기로 들어선 심리적 변화와 내적 갈등을 느끼게 하는 곡들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때에 작곡한 디베르디멘토(Divertimento, 희유곡 喜遊曲)들은 유쾌하고 우아한 이탈리아 풍 음악과는 다르게 비장하면서도 격렬한 울림을 갖는 교향곡의 색채를 더해 갔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D장조(Piano Concerto K.175)와 바순 협주곡 Bb장조(Bassoon Concerto K.191) 같은 최초의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도 이 시기에 작곡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누구의 의뢰를 받거나 지시받은 곡만을 작곡하는 하인 음악가가 아니라 점차 자유의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독립음악가의 발걸음이었다. 1774년 11월까지의 기록을 보면 모차르트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다만, 당시에 작곡한 작품번호의 양이 대단히 많은 것으로 보아 청년 모차르트의 엄청난 창작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1773년의 잘츠부르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음악적으로 크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모차르트가 연주 여행을 다니며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직업 연주가로 접한 유럽의 문화적 중심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제약과 간섭에 답답함을 이길 수 없었다. 넘치는 음악적 열정과 창작의 재능이 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탈출하고자하는 욕구가 끝없이 자신을 부추겼다. 1774년(18살) 4월 10일경 모차르트는 작년 7월에 빈에서 만난 게블러 남작이 쓴 대본으로 작곡한 오페라 ‘이집트 왕 타모스’가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4월 4일에 초연되었지만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작품이 고객과 청중을 항상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오페라가 성공한다면 다시 빈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희망이 무너지면서 잘츠부르크 탈출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 왕 타모스’를 작곡하며 질풍노도를 체험하고 자유의지를 체험한 바 있는 모차르트는 다음을 위해 즉시 이 작품에 대한 수정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이 되어 밝은 소식이 도착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선제후(1727~1777)로부터 뮌헨 사육제를 위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곡 오페라) 작곡 의뢰였다. 제목은 '가짜 여자 정원사(La Finta Giardiniera K.196)'로 대본은 이탈리아 극작가 ‘주세페 페트로셀리’가 썼다. 레오폴트는 콜로레도 대주교를 찾아가 유럽의 왕족과 공국의 영주들이 상호 유대를 쌓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임을 알리고 여행허가를 신청했다. 12월 8일에 모차르트 부자는 뮌헨으로 출발하여 그곳에서 12월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1775년 1월 13일에 뮌헨의 레두텐 잘(Redoutensaal)에서 궁정의 모든 신하들이 참석한 가운데 초연된 ‘가짜 여자 정원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음은 연주회 다음날 모차르트가 어머니 안나 마리아에게 보낸 편지 글이다. - 어머니께! 뮌헨, 1775년 1월 14일 고마운 일이에요! 내 오페라 '가짜 여자 정원사'가 어제 13일에 상연되었어요. 엄청 성공적이어서, 그 소동이라니, 엄마에게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어요. 우선 극장이 터질 정도로 만원이어서, 되돌아간 사람도 많았어요. 아리아가 하나씩 불릴 때마다, 박수와 함께 '작곡가 만세' 하는 함성으로 귀가 멍멍할 정도예요. 선제후비 전하(마리아 안나 조피,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부인)와 그 후실도 나에게 ‘브라보’라고 했고요. 오페라가 끝나고 발레가 시작되기 전 휴식 시간에는, 정신없이 박수와 브라보 소리뿐이었죠. 끝났다 싶으면 또 시작되는 식으로요. 그 뒤에 나는 아빠하고 같이 선제후하고 궁정 모든 분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방에 가서, 전하, 비전하, 그 밖의 고귀한 분들 손에 키스했어요. 모든 분들이 매우 자애로우셨죠. 오늘은 아침 일찍 킴제의 주교님이 사람을 보내, 내 오페라가 다른 사람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고 축하 말씀을 보내주셨어요. 우리는 그리 일찍 귀가하지는 못할 것 같네요. 엄마도 그리 기대하지 말아주세요. 한차례 쉬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엄마는 물론 알고 계시겠죠. 어쨌든 할 수 있는 한 일찍 돌아갈게요. 내가 꼭 필요한 이유는, 다음 주 금요일에 오페라가 다시 한 번 상연되기 때문이에요. 그 상연 때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한대요. 안 그랬다가는 모두들 어찌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군요. 어쨌든, 여기서는 아주 이상한 짓을 하거든요. -엄마의 손에 1000번의 키스를. 안녕히 계세요. 빔바르(애완견)에게 1000번의 키스를- 청년 모차르트의 ‘질풍 노도’의 작곡 기간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비평가들로부터 '천재의 빛을 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짜 여자 정원사’는 후기 바로크 오페라 부파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극적인 전개와 음악적 특징을 살려가는 기술과 표현이 과거의 모차르트의 형식을 넘어서서 차별화된 자신만의 톡특한 아리아 형식을 구사했다. 1775년(19살) 3월 6일 모차르트 부자는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1775년 겨울까지 모차르트는 K.279~K.284 까지 일련의 피아노 소타타를 일거에 작곡했다. 이어서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는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이것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자신을 위한 곡이기도 했다. 1776년부터 1777년까지 대단히 많은 모차르트의 작품이 생산되었지만 자신에게는 만족스런 시간이 아니었다. 오페라를 올릴 극장도 없었고 연주장을 찾고 음악을 이해하는 관객도 부족한 지역적 낙후성은 모차르트를 깊은 고뇌의 심연으로 끌고 갔다. 모차르트의 자의식은 계속 성장해 갔으며 자신이 원하는 오페라를 음악을 공감하는 관객들 앞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자유로운 예술가를 꿈꾸며 더 넓은 세계로 고개를 돌려 그곳에서 미래를 열고자 했다. 모차르트의 독립선언 1777년 3월에서 8월초까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자신과 아들을 위해 대주교에게 허가를 요청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미래를 위해 모험을 강행했다. 자신이 작성하고 모차르트가 서명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대주교는 대노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입신출세를 위해 두 사람 다 어디든 마음대로 가도록 허락함. 성서에 의거하여' 라는 답신을 보냈다. 냉정한 해고 통지였다. 모차르트의 앞길을 열어 주려고 쓴 편지가 자신까지 해고되는 결과가 된 것이었다. 당황한 레오폴트는 대주교에게 간청하여 자신이 다시 궁정악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그 뒤로 한 번의 빈여행을 제외하고는 다시는 잘츠부르크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레오폴트의 고민은 더 큰 문제에 있었다. 모차르트가 혼자 떠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 아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고집을 꺾고자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해결책을 마련했다. 생계를 위해 자신과 누이 닌네를은 잘츠부르크에 남고 모차르트는 어머니 마리아 안나와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짐)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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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창업은 자신의 가치관ㆍ관심사와 일치하고 최대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창업에 관심이 있어 창업아이템을 찾고자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의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이다.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유를 찾았다면 이제 고객 불편을 발견하는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된 셈이다. 내 관심사, 나만의 전문성이라는 이정표가 있으므로 고객 불편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여정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만약, 아직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잘 알 수 없다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필자같은 경우는 '나는 어떤것을 즐기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지난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고등학교때는 만화책과 소설을 너무나 좋아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만화책은 읽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책은 하루종일 읽는 경우도 있어 소설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볼 수 있고,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는 즐거움을 민끽하고 있다. 또한, '내가 잘하는 것을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을때 잘하는 것은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므로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지원하는 업무와 엔젤투자클럽 활동을 하면서 쌓은 투자활동을 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 관심을 같고 있는 것은 농업이나 부동산 등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가 아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창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이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시행착오나 궁리가 필요하다고 볼 수가 있다. 창업의 이정표를 찾았다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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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지역 브랜드 예술축제 제주국제관악제&평창대관령음악제[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강원도 평창대관령음악제 지난 7월 23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는 우리나라 클래식음악축제를 대표하는 대관령 평창국제음악제의 폐막공연이 진행되었다. 오보에 함경, 바이올린 윤소영, 비올라 랄프 시게티, 첼로 한재민이 출연하여, 벤자민 브리튼의 ’판타지 사중주‘를 연주하였다. 다음 무대인 피아노, 플루트, 첼로를 위한 트리오 또한 정통적인 삼중주의 형식에서 플루트의 특성인 목관의 부드러움이 가미되어 독특한 멋으로 다가왔다. 이어진 생상스의 칠중주와 바르토크의 클라리넷 삼중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음곡은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은 훌륭한 사운드로 보기 드문 수준 높은 앙상블의 무대였다. 올해 대관령음악제는, 강원도 출신의 라이징스타들과 정상의 젊은 음악인의 참여 확대, 다양한 편성의 앙상블 프로그램, 휴가철 성수기를 피한 숙박 및 교통 불편 해소,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아카데미를 신설한 음악학교 기능 강화 등 예술적 프로그램과 운영적 측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하였다고 평가 받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관악콩쿠르 제주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축제인 제주국제관악제는 지난 8월 8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월 16일 콩쿠르 시상식 및 입상자음악회를 끝으로 10일 동안의 여름시즌을 종료하였다. 개막식에서 이문석 작곡가의 창작곡인 취풍류는 태평소와 서양의 윈드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국악과 양악의 콜라보가 빛을 발하였다. 또한 방송으로 인기몰이를 한 소리꾼 고영열과 테너 죤노의 무대는 친밀감을 더하였고, 후반부 세계 최정상의 영국브라스앙상블 코리밴드의 무대는 일천명의 관객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면서 기립박수와 커튼콜 요청에 공연장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하였다. 제주국제관악제 또한 대관령음악제와 유사한 면이 많다. 국내 최고의 관광 휴양지에서 시즌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되는 점, 국제 규모의 음악제로 수준 높은 음악인들이 참여하는 점, 지자체가 주최 기관으로 참여하는 점 등이다. 그리고 향후 음악학교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자 하는 점, 지역 예술가와 청년 음악인의 출연을 확대하려는 노력, 국외 정상의 연주자 출연과 지역 문화 소재의 창작곡 확대 등은 공통의 과제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예산 규모를 보면, 19회째인 대관령음악제가 27회째인 제주국제관악제보다 약 8억원 정도가 많고, 평창 알펜시아콘서트홀과 뮤직텐트 등의 전용 공연장이 있는 점은 제주국제관악제 입장에서 매우 부러운 상황이다. 행정의 권리이자 책임: 문화정책 팔길이 원칙 제주국제관악제와 평창 국제음악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규모의 전문음악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제주국제관악제는 대중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제주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축제로 성장하고 있고, 세계 최초로 관악축제와 금관악기 전 종목의 콩쿠르를 동시에 추진하는 유일한 음악축제이다. 또한 우리나라 초ㆍ중ㆍ고 교과서에 등록되어 있고, 에든버러페스티벌, 잘츠부르크음악제, 전주세계소리축제, 통영국제음악제 등과 함께 소개되고 있는 글로벌 문화예술축제이다. 이 축제 하나로 아시아의 조그마한 제주섬이 유럽과 세계 여러나라에 우리의 문화와 고유한 전통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행사 규모에 비해 한참 부족한 예산, 운영조직 시스템과 전문인력의 부재, 다양하고 수준 높은 공연이 이루어질 관악제 전용 실내ㆍ외 공연장의 확보 등은 향후 과제로, 주최하는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제주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이 두 축제는 단순한 음악행사를 넘어서 지역을 브랜드하는 문화예술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축제로 인한 경제적ㆍ교육적ㆍ문화적ㆍ사회적 파급효과로 지역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속의 예술축제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운영, 지도, 관리 감독하는 행정과 문화예술기관의 지속적이면서 체계적인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은 필수이면서 특히, 예술가들의 고유성과 자율성 및 창의성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행정의 권리이자 책임인 '팔길이 문화정책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