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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와 한국의 문화재 그리고 프랑스의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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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가 컬럼] 캄보디아와 한국의 문화재 그리고 프랑스의 약탈

최인규 교수
캄보디아 바티에이 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경영학 박사

[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캄보디아와 한국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역사적 사실에 대한 대표적 공통점은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 의한 36년의 식민기(植民期)가 있었고 캄보디아는 무려 90년(1863~1953) 동안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겪은 일본의 식민 지배는 아픈 역사로 남아있지만 캄보디아는 자신들이 주변국으로 부터의 숱한 외침을 이겨내지 못해서 스스로 프랑스에게 보호를 요청한 자발적 보호 요청이었기에 우리와 달리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다.

 

그리고 캄보디아와 한국은 프랑스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며 겪었던 소중한 문화재를 그들에게 약탈당한 일은 지금까지 아픔으로 남아있다. 한국은 프랑스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에게 빼앗긴 국보급 문화재가 있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문화재 도굴을 포함한 일체의 행위를 ‘약탈’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만큼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무력으로 빼앗던, 몰래 반출했던 이것은 모두 중요한 범죄 행위이기에 ‘약탈’로 표현하겠다.】

 

한국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부터 약탈당한 문화재 중 국보급 중요 문화재로는 '외규장각'을 비롯하여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다행히도 이 중 '외규장각'도서는 1993년 프랑스 고속철 도입에 대한 반대급부로 ‘영구대여’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는 신미양요 때 미국이 수탈한 문화재나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지배때 빼앗긴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겪는 동안 그들에게는 국가의 존립이 최대의 목표였기에 식민기(植民期) 동안 그들의 숱한 문화재를 지키는데 전혀 힘을 쓰지 못하였다. 나아가 문화재 보호나 복원에 대한 욕심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 그들은 프랑스에게 약탈당한 어마 어마한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지만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캄보디아 교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앙코르 시대의 중요한 문화재는 캄보디아보다 프랑스가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확한 통계마저 프랑스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 약탈한 앙코르 시대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엠립 북쪽에 ‘여인의 성채’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번떼이 스레이’사원이 있다. 대개의 앙코르 유적은 왕에 의해서 지어졌지만 이 사원은 보기 드물게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에 의해서 지어진 사원이다. 그래서 왕이 축조한 여느 사원보다 규모를 크게 만들진 못했지만 대신 아담한 규모의 사원을 마음껏 뽐내어 건축한 대단히 아름다운 사원이다. 그리고 이 사원에는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제일 아름답다는 여신상이 있는데 오래전 이것을 도굴하려던 일이 있어 소개하겠다.

 

1923년 프랑스의 한 청년이 이곳을 관람하던 중 벽면에 부조된 여신상을 떼어내려다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단순 문화재를 넘어서 국보급 가치를 가질 정도로 높게 평가받고 있던 유물이었기에 캄보디아 왕실의 노여움은 대단히 컸으며 이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서게 된다. 결국 이 청년은 수도 프놈펜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6개월 후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 석방되었고 강제 추방되었지만 식민 지배를 받는 약소국 캄보디아가 보여준 강경 대응에 프랑스 정부도 곤혹스러웠다고 전해진다. 왜냐면 식민 통치를 하는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당시에는 문화재 도굴을 포함한 밀반출이 큰 죄의식 없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청년은 몇 년 후인 1930년, 이 도굴 사건을 주제로 한 자전적 소설을 집필하여 출간하였으니 그 책이 유명한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유명한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말로(André-Georges Malraux)’이다.

 

그는 이후에도 ‘인간의 조건(1933년)’ 이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였지만 이때의 도굴 사건으로 그는 대문호라는 평가와 더불어 도굴꾼이란 불명예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번떼이 스레이’ 사원에 가게 되면 관광 가이드로부터 듣게 되는 설명에 어김없이 ‘앙드레 말로’의 도굴 사건이 설명되고 있고 관광 가이드북에도 소개되고 있으니 그는 죽어서도 도굴꾼의 멍에를 계속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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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교수 사진제공 -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말로’가 여신상을 도굴하다가 적발된 ‘번떼이 스라이’ 사원

 

또 다른 유적 반환에 대한 일화가 있다. 2016년 1월 23일,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중요한 문화재 한 점을 반환 받아서 이 유적의 환영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던 일이 있다. 이것은 1889년경 약탈되어 프랑스 파리의 ‘기메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캄보디아 국보급 ‘하리하라’ 힌두신의 석상이고 약탈 당한지 1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신상은 불법으로 반출될 당시에는 원래의 신상이 거대하고 무거운 이유로 목 부분을 잘라 아름다운 두상만 반출하였고 캄보디아에는 나머지 몸통 부분만 남아 있었는데 이때의 반환으로 온전히 전체가 합체된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반환식을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하리하라’신상 몸체 합체식이라 하여 국가적인 거대 환영식으로 치렀다.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수량이 방대하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노력으로 되돌려 받은 문화재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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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교수 사진제공 - ‘앙코르 왓’ 전경

 

오늘날 캄보디아 당국은 관광객들로 인한 문화재 불법 반출이나 물리적 훼손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행위가 적발되었을 때 대단히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8월 12일 한국인 대학생 봉사단원이 앙코르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장소는 유명한 유적지 ‘앙코르 톰’의 주출입문인 ‘남문’에서 벌어졌다.

 

한국인 청년은 사진을 찍기위해 몸을 움직이다가 ‘남문’ 입구 좌우에 조각된 108개의 석상 중 한 개의 석상 머리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 일은 캄보디아 전국은 물론 외신으로까지 보도 되었으며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게 되었다. 여론 또한 나쁘게 악화되었으며 파문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목격자들은 이 한국 청년이 손으로 석상의 머리 부분을 밀쳤다고 하였으니 이 행위는 대단히 중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이 일로 추락한 석상의 머리 부분은 원래의 조각상 머리 부분이 아닌 이미 훼손된 부분을 시멘트로 만들어 얹혀 놓은 모조품으로 밝혀졌고 파손의 행위 역시 손으로 밀친 것이 아니라 사진의 구도를 잡기 위해서 몸을 살짝 기대는 순간 이미 약해진 접합 부분이 분리되며 모조품 두상 부분이 추락하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국 캄보디아 경찰 당국과 유적을 담당하는 당국의 고심 끝에 해당 한국 학생에게 경고로 마무리 되었다. 만일 이 훼손된 유물이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었다면 엄한 처벌과 손해 배상을 피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쨌거나 한국은 이 일로 국제 망신을 톡톡히 치렀던 사건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캄보디아 정부는 관광객에 의한 유적 훼손이나 파손에 대비한 다양한 방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캄보디아 당국의 노력만으로 지켜지기엔 그 규모가 방대하고 관리에 어려움도 있어 관광객들의 수준 높은 문화 의식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필자는 현재 캄보디아 정부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는 앙코르 유적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자문 교수로 참여하고 있어 거의 매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앙코르 왓’에 나가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한적한 ‘앙코르 왓’을 보면서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지만 앙코르 유적의 입장에서 보면 긴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때를 이용하여 여러 복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앙코르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캄보디아 국민의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키고 보존해야할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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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교수 사진제공 - 한국인 대학생 석상 훼손 사건이 벌어졌던 ‘앙코르 톰’ 남문

 

이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관광 금지도 머잖아 해제되리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앙코르 유적군에는 예전처럼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문화재 보호에 수준 높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기대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hwa37111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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